꽃보다 아름다운 '3.8'의 유혹 (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봄이 온다.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이 온다.
여성단체 활동을 하기 전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3.8은 그저 365일 중의 하루였다. 그런 3.8이 이제는 1년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다이어리를 사면 제일 먼저 빨간색으로 별 표를 그리는 날이 되었다. 대체 무슨 날이길래.
3월 8일은 세계여성의날
3월 8일은 세계여성의날이다. 1908년 미국 루트거스 광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인 것을 기점으로 세계여성의날이 시작되었다.
정치에 참여할 권리도 없고 노동조건과 댓가의 불합리로 늘 생활고에 허덕이며 차별받던 여성들의 정당한 삶의 요구에 대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여성의 인간다운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 우리는 자매애와 연대의식에 기반해 해마다 이 날을 기념하고 성평등의 실천을 결의한다.
우리집을 보면 세계여성의날의 성과가 어느 정도 열매를 맺은 것도 같다. 7년 전 결혼한 나의 남편은 가사와 돌봄노동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둘 다 일을 하고 있는 우리는 주말이면 서로의 스케쥴을 확인하고 이번 주 아이 어린이집 하원 당번을 정한다. 그 날 하원을 맡은 사람은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부터 해서 저녁을 챙기고 집안 일을 하고 아이와 함께 노는 몫을 모두 감당한다.
남편은 주말이면 대청소를 하고 종종 나를 위한 도시락도 싼다. 물론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그러나 이렇게 살갗으로 가사와 육아 역할 배분의 호사(?)를 누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3.8은 여전히 꼭 필요한 날이다. 당장 우리집을 나가면 나의 의지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차별이 나를 엄습한다.
여전히 남은 차별의 강요
결혼제도로 인한 호칭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명절이면 어떠한 경우에도 꼭 시가(媤家)를 먼저 가야할 때 부당함을 느낀다. 성매매와 성폭력의 존재, 여성폭력의 결과가 사회안전망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여성의 밤길 귀가시간 단축으로 강요될 때, 우리 사회 빈곤과 비정규직차별의 문제에는 여성이 그 고통의 중심에 있다.
진보진영에서조차 성불평등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나는 우리가 여전히 차별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쓴뿌리의 불평등이 우리에게는 아직 너무 많다.
여성연합은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며 해마다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한다. 올해로 딱 25년이 되었다. 강산이 두 번 반 변하였고 성년도 훌쩍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사회는 평등의 문제에서 어린아이이다.
올해도 3월 8일 당일 청계광장에서 한국여성대회가 열리고 여성의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한 외침과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결의가 모아질 것이다. 나는 우리가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날을 기억하고 기념했으면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숙제
세계여성의날은 지나간 날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 살아있는 날로서 현재진행의 의미가 있고 기억되어야 할 날이며 내가 누리고 있는 우리 가정의 평등은 수 많은 세계여성의날의 역사동안 나의 자매들이 싸워 이룬 결과임을 알기에 오늘의 투쟁이 미래세대를 위해 계속해나가야 할 숙제임을 깨닫는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빗대어 ‘꽃보다 3.8!’이라며 사무실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그래, 정말 꽃보다 3.8이다. 꽃보다 3.8이 아름답다. 봄이 온다. 꽃구경 가지 말고 3.8에 오라.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자며 3.8이 당신을 유혹하고 있다.
글쓴이 유일영
여성연합 활동가
2009.02.16 ⓒ 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