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료실/보도자료

선거구마다 여성 1명 이상’ 선거법 개정해도...(출처:한겨레)

선거구마다 여성 1명 이상’ 선거법 개정해도…


류정이·김선미·서진아씨가 들려준 얘기처럼 여성은 지방자치의 핵심이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뿐 아니라, 육아·교육·복지 같은 생활 의제를 다루는 지역정치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지방자치가 발달한 것도 생협을 중심으로 한 주부들의 참여 덕분이었다(792호 표지이야기 참조).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자치에서 활약하는 여성 정치인은 드물다. 여성 광역단체장은 단 한 명도 없고, 기초단체장도 4명(김영순 서울 송파구청장, 박승숙 인천 중구청장,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이청 전남 장성군수)에 불과하다. 여성 광역의원은 89명(12.1%), 여성 기초의원은 2778명(15.7%)인데, 그나마도 공직선거법에 따라 절반을 여성 후보로 공천해야 하는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지역구에서 선출된 여성 지방의원 비율은 5%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왜 그럴까? 조직동원력·자금력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세다. 동네에서 목소리깨나 높인다는 사람이 누군지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자영업자나 공무원 출신, 관변단체 임원 등 지역에서 ‘유지’로 행세하는 이는 대체로 경제력이 있는 남성들인데, 이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면서 끈끈한 유대를 유지한다. 누군가 선거에 나설 경우 인적·물적 지원이 얼마든지 가능한 관계다. 반면 여성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런 차이는 여성에게 공천을 당선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정당의 공천제도와 경선은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여성에겐 엄청난 장벽이다. 당원들의 의사로 결정되는 경선은 조직동원력에 좌우되는데, 여성은 남성보다 힘이 달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성 중심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선거 때마다 정당이 내놓는 얘기가 “공천할 만한 여성이 없다” “여성 후보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평소 여성 정치인을 키우려는 노력조차 안 하고, 때 되면 구색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의 지적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국회는 정당이 광역·기초 의원을 공천할 때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여성을 반드시 1명 이상 포함시키고 이를 위반하면 해당 지역 후보 등록을 무효화하도록 지난 2월 공직선거법을 개정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개정 선거법에 따라 여성 지방의원 비율이 20~25%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정당들도 저마다 여성 공천을 확대하겠다며 갖은 약속을 꺼내놨다. 한나라당은 서울 3곳(동작구·송파구·강남구), 부산·경기 각 2곳, 다른 광역시·도 각 1곳 등의 기초단체장 후보에 여성을 전략공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공천 심사 때 여성에게 가산점 20%를 주고, 수도권 기초단체 3곳에 여성을 전략공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전체 후보자의 30%를 여성으로 공천한다.

하지만 말과 행동은 다르다.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는 4월14일 이은경 변호사와 박인숙 울산의대 교수, 이재순 전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을 각각 강남·송파·동작구청장 후보로 영입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천을 확정하는 서울시당 공천심사위원회는 4월22일 현재 심사 절차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공심위원장과 부위원장인 이종구(강남갑)·유일호(송파을) 의원이 이들의 ‘경쟁력’을 문제 삼아 중앙당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탓이다. 다른 지역은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구에 여성을 전략공천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민주당 상황은 더 갑갑하다. 234개 기초단체 가운데 민주당이 공천한 여성 후보는 인천 부평구청장 선거에 출마하는 홍미영 전 의원이 유일하다. 여성 전략공천을 어디에 할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한 여성 예비후보들은 지난 3월28일 당사에서 농성까지 벌였다. 하지만 민주당 역시 “이번엔 한나라당을 이길 후보를 내야 한다”는 이유로 여성 공천을 주저하고 있다.


생활정치 정착, 또 하나의 상식을 위해


보다 못한 여성단체들은 4월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각 당에 기초단체장 20%, 선출직(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구 지방의원과 단체장) 30%를 여성 몫으로 공천하라고 촉구했다. 여성의 정치 진출 활성화를 위한 여성계 모임인 ‘2010 지방선거 남녀동수 범여성연대’는 이날 “실질적으로 공천 권한을 행사하는 당협위원장들로 인해 중앙당 차원의 여성 공천 확대 약속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각 지역 당협위원장이 여성할당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지 모니터링해 그 결과를 공표하겠다”고 밝혔다.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은 당협위원장이 실행한 여성 공천 결과를 유권자에게 알려 다음 총선의 ‘선택 기준’으로 삼도록 하겠다는 압박인 셈이다.

정당문화와 정치제도, 여성에 대한 인식이 한꺼번에 바뀌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상상’으로 여겨지던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제는 어느새 ‘상식’ 이 됐다. 지역정치를 실질적인 생활정치의 장으로 만드는 것도 상식이 될 수 있다. 그건 유권자의 힘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