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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보도자료

식당일 끝나면 집안일 (출처:한겨레)

 

식당일 끝나면 집안일 [2009.10.16 제781호]

[표지이야기-노동 OTL 제2부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여성 8782명 가운데 91%가 거의 매번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담당해

“식당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일하는 건 똑같아.”

A갈빗집 ‘팀장 언니’가 말했다. 그의 거친 손은 식당일이 절반, 집안일이 절반의 책임이다. 10년 전, 남편이 공장을 운영할 때는 공장 식구들 밥을 전부 해먹였다. 20년간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웠다. 아침을 먹이고, 도시락을 싸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지금도 밤 10시에 퇴근해 집에 가면 밥을 차려 가족과 먹는다. 아침에도 빨래를 해 널어놓고 출근한다. 억척스럽다.

12시간 식당일, 3시간 가사노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내놓은 ‘2008 여성가족패널조사’는 ‘억척’을 증명한다. 기혼 취업 여성의 경우 평일에는 184분, 토요일에는 203분, 일요일에는 213분 가사노동을 한다. 퇴근한 뒤 하루 3시간 이상 가사노동을 하는 셈이다. 평균만도 이렇다. 12시간 식당일을 마치고 3시간 가사노동을 하면 하루 9시간이 남는다. 출퇴근 준비 시간을 빼면 잠잘 시간도 빠듯하다.

한 달간의 식당일을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되도록이면 집안일을 그대로 두라 했다. 자녀를 키우는 ‘식당 아줌마’들에게 주어진 집안일이 내 것보다 더 많을 테다. 조금이라도 더 비슷한 환경을 만들려 했다. 아침을 해먹고 설거지를 하고, 저녁에 집에 와 빨래와 청소를 할 요량이었다. 의욕은 좋았다. 하루이틀 집안일이 쌓여갔다. 집에 가면 짜증이 났다. 싸움이 잦아졌다.

식당 아줌마들은 식당일을 하며 집안일을 걱정한다. “집에 김치가 떨어진 지 한 달짼데….” B감자탕집 ‘주방 언니’가 깍두기를 담그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감자탕집에서 주방 언니는 3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가야 한다.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번갈아 담근다. 3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그는 언니가 김치가 없어 걱정이란다. 3개월째 못 쉬다 보니 집에서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할 시간이 없다. 가족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가게 바로 옆 마트에 뛰어가 감자 몇 개를 사온다. 감자를 볶아놨다가 하굣길에 식당에 들른 중학생 아들 손에 쥐어준다. 저녁 반찬이자 다음날 도시락 반찬이다.

» 하루하루 억척스럽게 산다. 식당일을 마치면 다시 앞치마를 입고 가족이 먹을 것을 준비한다. “부지런히 사는 방법밖에 없다”고 ‘식당 아줌마’들은 말한다.

A갈빗집 팀장 언니처럼 B감자탕집 주방 언니도 퇴근 뒤 늦은 저녁을 먹는다. 밤 9시가 되도록 가족은 엄마를, 아내를 기다린다. 주방 언니에겐 가족이 함께 식사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고스란히 일이다. “어제는 집에 가서 바지락 칼국수를 해먹었어. 애들이 잘 먹더라고.” 내가 집에 돌아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동안 주방 언니는 칼국수를 만들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며 몸을 움직이다 보면 밤 12시가 금방이란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를 도우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하루만 푹 자는 게 소원이다.

하루만 푹 자는 게 소원

비정규직 중년 여성에게 가사노동은 또 하나의 굴레다. 위 조사에서 여성 8782명 가운데 91%가 거의 매번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자신이 담당한다고 응답했다. 아내가, 엄마가 없으면 가족은 밥 먹기도 힘이 든다. ‘가족의 행복’과 ‘먹고살 돈’을 위해 아줌마는 달린다. 집이든 식당이든 멈출 수 없다. 억척스러운 건 아줌마가 아니라 세상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