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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보도자료

[02. 11. 1] [펌]조한혜정 "개기면서 살아남기"

[펌]조한혜정

“개기면서 살아남기”
지성과 패기 1996년에 낸 원고, 지금도 유효한.

격변기를 살아가는 방법 하나: 개기면서 살아남기

1. 왜 개기지 않는가?

"너흰 왜 개기지도 않니?" 너무 쉽게 일을 포기해버리는 듯한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서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실은 학생들이 개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학기 내가 맡았던 1학년 수업에서도 학생들은 상당히 개었다. 학기 중반쯤부터 적지 않은 학생들이 "창의력"을 강조하는 내게 "그래, 난 창조적이지 않다. 어쩔래?"라며, 집단적 무표정과 무반응으로 내게 항거했다. 나는 그런 학생들이 미웠고, 그런 학생들 때문에 창의적인 학생들까지 피해를 본다고 화를 냈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학기 끝까지 그런 식으로 개겼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개겼다고 한다. 책상에 붙어 앉아 공부하는 척하면서 실은 잡생각만 했고, 독서실에 간다고 하면서 실은 당구장에 갔었다고 한다. 주어진 모순적 상황에 억울하게 끌려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살았다면서 자랑스러워들 한다. 그런 면에서 십이년 동안의 입시 교육을 거쳐 대학에 들어온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모두 "개김"에 도가 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온 그들을 보면 별로 도가 튼 사람 같지 않다. 개기기는 개기는데 고작해야 "신경을 끄는" 정도이고, 그보다 더 나가면 상당히 자기테러적이어서 염려스러울 지경이다. 내가 말하는 "개김의 태도"는 그것보다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것이다.

"개기기"는 합법적인 투쟁의 방식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쓰는 저항의 방식이다. 이길 승산이 별로 없는데도 꿈틀거릴 때 우리는 개긴다고 말한다. 이는 대체로 전면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적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또는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될 때 취하게 되는 저항의 한 방식이다. 개기는 이들은 분명한 승부의 일정표를 갖고 있지 않지 않으면서 상황에 따라 재빨리 적응하면서 싸운다. 주로 "삐딱하게" 굴면서 애매모호하게 권력자를 화나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들며, 그 일을 하는 것 자체로 자기들끼리 충분히 즐거워한다. 이들은 권력자를 흉내내기보다 그와는 거리를 두고 자신들만의 공간을 지켜가는 분리주의의 전략을 선호하며, 종종 자신의 공간 속에 권력자의 생각을 능가하는 많은 상징적 자원들을 비축해 둔다. 맞대결을 하면 자신이 지게 마련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지혜와 꾀로 권력자의 게임을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이들의 목표라면 목표이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딴 청"을 피우면서 노는데, 실은 시스템을 허물기 위한 장기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항은 좁은 의미의 제도 정치보다는 포괄적인 생활정치의 차원에서 일어나며, 문화적 형태를 띈다.


2. 개김/수동적 저항 행위의 역사적 차원

역사적으로 이러한 저항 양식은 식민주의적 지배가 장기화된 곳의 주민들이주로 활용해온 방식이다. 일제 시대 3.1 만세 사건이 좌절된 후 조선의 민중들은 일본의 회유책에 맞서서 개기는 방식을 선택했다. 음력설을 쉬지 말고 양력설을 쉬라는 일제 식민지 당국의 명령이 내려지자 악착같이 이중 과세(?)를 한는 행위가 그런 행위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근대사는 일면 "개김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착취에 대항해서 민중들은 열심히 개겼으며,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았던 이승만 시절의 공무원들도 열심히 개겼다. 지금도 세관에 가면 가장 바닥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마냥 늑장을 부림으로써 개긴다. 이런 식의 개김은 일제시대부터, 아니면 조선조의 몰락기부터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전통'일지 모른다. 우리의 근대사는 '개김의 정치학'을 한껏 활용한 민중의 시대사로서의 측면이 없지 않는데, 이를 두고 어떤 외국인은 "한국은 법 위에 편법이 있는 사회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고질적인 노예근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개김의 미학을 두고 어떤 정치 철학자는 한국 국민의 높은 정치의식의 표현이라고 하고, 다른 이는 뿌리 깊은 부정부패의 온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도의 간디가 선택한 무저항주의도 상당 부분 "개기는" 전략을 사용하였으며, 식민지지배가 장기화된 곳의 주민들은 이 방법의 위력을 잘 알고 있다.

미국사회에서 1960대 마틴 루터 킹이 이끈 민권운동이 장기화되면서 흑인해방주의자들 역시 이 개기기 전략을 상당 부분 활용해왔다. 음악적 장르로 말한다면 백인 중산층 청소년들이 만들어낸 록이 직접적인 대항을 시도한다면 흑인들이 만들어낸 랩은 "개긴다". 짐 모리슨의 록 음악과 [댄저러스 마인드]나 [클러커스]에 나오는 게토 [래퍼]들의 저항은 분명 매우 다르다. 백인 중산층 아이들은 개기지 않고 대놓고 저항한다. 그들은 여전히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개기는 사람은 대놓고 저항할 수 없는 주변인들이다.

최근 서구인들이 "개김의 정치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갑자기 자신들이 주변화되었다고 느끼게 된것일까? 이들은 두 차례에 걸친 유럽 대전쟁을 겪으면서,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환경 오염과 더욱 심해지는 계급 양극화와 인간 소외의 양상을 보면서 자신들이 그 무엇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열렬하게 추진해간 '근대기획'에 큰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고, 그래서 '탈근대 기획'을 이야기하며 제 3세계 선배들로부터 배우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은 듯 하다. 자체내 생명력을 가지게 된 '거대 자본'은 전 지구를 마음대로 떠다니며 자기 나름의 진행속도로 지구상의 생명들을 날려버리고 있다.

영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너무나 깊숙히 "근대 기획"에 관여해 있기 때문에 벗어날 길을 볼 눈을 잃어버리고 말았고, 섣부른 행동은 오히려 그 기획에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그 기획의 바깥에서 딴 살림을 차리는 방법만 남았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서구의 인문학자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민중'의 개기기/살아남기 전략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수동적인 저항"이라는 개념으로 '개김의 정치학' 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람시와 푸코와 사이드를 인용하면서 죽음을 불사한 영웅들의 투쟁사가 아니라 민중들 사이에서 일었던 일상적인 작은 저항들로 만들어진 역사에서 인류 생존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항대립을 넘어서자거나, 대서사를 파기하고 소서사를 쓰자거나, 폭력적인 단일적 주체를 넘어서 다중적 주체를 살려내자거나, 문화 게릴라전을 하자는 이야기들은 모두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빼도 좋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피억압 계급의 '개김'에 눈을 돌리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버밍햄 학파의 폴 윌리스는 노동자 계급 출신 청소년들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온상인 학교를 거부하며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지"를 연구함으로 계급 재생산의 기제를 보다 역동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그는 계급적으로 체계적 억압을 당해온 영국 노동자 계급 출신 청소년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않는 것은 자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찍이 계급모순을 간파하고 그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해 저항을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윌리스는 이 연구를 통해 한 사회에서 피억압자들의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동시에 "제대로 개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이들 노동계급 남자청소년들은 중산층 중심 자본주의체제에 항거하지만, 한편 대영제국의 남자로서의 정체성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주민과 여자들 위에 군림함으로 가부장주의와 제국주의와 모종의 결탁을 하며, 이로써 자신들의 '개김'이 적극적인 체제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게 된다.*

3. 제대로 개긴다는 것.

그러면 이 시대에 잘 개기는 것은 어떤 것일까? 조선조 말기, 또는 일제시대 사람들이 권력자들로부터 억울하게 빼앗긴 무엇을 도로 찾아내기 위해 개겼다면, 지금 세대는 얼굴 없는 권력을 향해, 인간적인 것들을 도구화해 버리는 거대한 게임에 휘말려들지 않기 위해 개겨야 하는 운명에 있는 것 아닐까?

'개김의 정치학'에서 중요한 것은 체제 자체에 틈을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개기는 주체는 좀 더 영리해져야 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된 장기전을 펼 수 있는 혜안과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억압의 체험을 공유하는 자들 간의 활발한 의사소통과 연대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변인은 자신의 주변성과 대면하기 싫어하며, 중심에 들기를 열렬히 바라는 사람이다. 만일 그가 제대로 저항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이 가진 주변성, 내지 억압성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차별을 받는 흑인들이 흑임 됨을 자축하면서 차별적 제도를 없애기 위해 뭉치듯이, 또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이 '명예 남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자기비하에 젖은 여자들과 하나 되어 가부장제를 엎어칠 방안을 모색하듯이, 우리는 각자 선 자리에서 동지들을 만든 후 그들과 함께 일상적 생활의 장을 "즐거운 개김"의 현장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을 들어온 학생들 중에서 자신의 자유로운 감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개긴' 사람들을 알고 있다. 자신을 옭아매는 체제에 대해 끊임없이 "엿먹어라"면서 딴 살림의 차렸던 이들을 알고 있다. 이들은 입시체제와 타협을 하지 않고 살았으며, 그런 경험이 있으므로, 대학에 와서도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개기면서 자신을 지켜간다. 반면 그 시기를 순응하며 지낸 이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대학이 만병통치약을 주는 곳이 아님을 알고는 급격하게 파시스트가 되거나 소비자본주의 사회가 부추기는 갖가지 중독증에 걸려들고 있다. 갈등이 생기면 고등학교 시절에 늘 해 온 것처럼 얼른 신경을 꺼버리고, 시간을 떼우러 당구치러 가거나 통신 대화방에 숨어 들어간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잡담을 하거나 삐삐로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연민과 냉소와 무기력이 사회를 감싸고 있다.

예전에는 "내 인생을 보상하라"는 식의 울분을 터트릴 대상이라도 있고 "앵겨들" 선배들이라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대상조차 없다. 되돌아 보면 "명분있는 복수"를 할 수 있던 1980년대는 좋은 시절이었다. 그때는 나름대로의 시스템이 있었고, 뒤늦게 "속았음"을 알게 된 이들이 합심하여 복수를 기도 하면서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평생을 벗할 동지도 만났었다. 지금은 복수할 대상도 분명하지 않고, 선배도 없으며, 무슨 일을 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다. 십여년동안 변혁운동의 아지트로서 자리만 빌려주면 되었던 대학은 여전히 안일하고 무능하게 퍼져있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난파선의 귀퉁이를 붙잡고 부유하는 이들처럼 캠퍼스를 떠돌며 4년의 세월을 흘려보낸다. 지금 학부제를 실시하면서 대학이라는 난파선은 보다 분명하게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평등과 평화의 나라는 있지 않다. 악몽 같은 시대는 상당히 오래 이곳에 머물 전망이다. 거대 자본의 총아가 되어 죽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든가 무기력증에 빠진 회사원으로 일생을 보낼 생각이 없다면 어찌할까? 지금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자신을 상하게 하는 짓은 그만 하자.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생산적으로 개기기 시작하라.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연대하며
난파선이나마 조각배를 타고 항해를 계속해라!
즐겁게 개기면서 세기말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남아야 한다!